[value design column 09] 초연결사회와 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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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lue design column 09] 초연결사회와 개인
  • 한국데이터경제신문
  • 승인 2020.04.12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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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을 연결할것 인가에서 왜 연결해야하는지에 관해 새롭게 자각하기 시작하다 -
말이 포털로, 포털이 SNS로, SNS 그 다음 세상은?
말이 포털로, 포털이 SNS로, SNS 그 다음 세상은?

 

월요일이면 어김없이 학교 운동장에서 1시간씩 교장선생님의 '애국 조회'를 1미터 간격으로 서서 듣던 학창시절이 있었다. 우리는 애국이라는 키워드에 비자발적으로 서있던 체스판의 말이었고, 어떤 알 수 없는 에너지를 위해 나의 시간과 공간 그리고 인간을 연결해야하기도 했다. 타의에 의해서다. 국가 권력에 의해서다. 다행히도 지금 아이들에겐 그런 일이 사라졌다.

증기기관의 발명 이후 급속한 산업화 뿐만 아니라 인간의 발전 속도는 눈이 부시고 각 집단들의 자발성은 날로 늘어나고 있다. 각 문명권 나름대로의 민주주의를 위해 나아가고 있다. 우리는 아주 짧은 시간에 정보의 무한 확대를 통해 인류를 업그레이드했다. 그리고 이제는 초연결(hyper-connected)이라는 개념으로 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사물의 본질에는 양면성이 있다. 급속한 속도로 진화하는 인간을 둘러싼 환경은 새로운 고립의 시대로 나아가게 한다. 인터넷은 역설적으로 여기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

초연결은 인류의 천년영웅 중에 하나인 징기스칸 시대부터 시작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역참제이다. 역참제는 지금의 정보 인프라이자, 물류 시스템이며 군사 고속도로라 할 수 있다. 일종의 말 정거장이지만 중앙집중식이 아니라 점조직으로 되어있었다. 몽골의 초원에서 유럽의 헝가리까지 이어 달릴수 있는 '말'을 이용해, 전쟁의 승리 뿐만 아니라 다양한 정보가 일주일이면 도착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일종의 말 전용도로였고 말은 지금 시대의 정보이다. 초연결은 그런 의미에서 프로토콜 시대의 역참제이다. 

초연결은 2007년 미국의 IT 컨설팅 회사 가트너(The Gartner Group)가 처음 사용한 말이다. 초연결 사회는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물, 사물와 사물이 네트워크로 연결된 사회이며, 모든 사물들이 마치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사람과 연결되는 사회를 말한다. 인류는 초연결을 통해 급속도로 정보의 기본적인 평준화와 영향력의 확대를 가져오게 되었다. 

그러나 마티아스 호르크스가 '기술의 종말'에서도 언급했듯이 '이것 아니면 저것'이 아니라 '이것 뿐만 아니라 저것도 역시'이다. 새로운 기술과 방법론에는 여전한 시간의 여백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속에는 기술의 우선보다는 인간의 숨은 욕구(unmet needs)를 찾아내는 지혜가 필요하다. 

인간은 그 자신의 생존과 보호를 위해 아주 디테일하고 일상적인 욕구를 숨겨왔으며, 그것들을 찾아내는 사람들이 항상 역사의 주인처럼 등장하기도 했다. 알렉산더, 징기스칸, 나폴레옹, 히틀러와 같은 인류의 역사에 족적을 만든 이들의 삶에는 자신과 자신 주위의 관찰을 통해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이해하고 이를 실천으로 옮겨 지구를 단순화시켜놓은 것이다. 

단순화에는 관찰을 통해 불필요한 것을 제거하고 본질에 충실해야하는 결단이 필요하기도 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우리는 그걸을 습관화해서 실천하기가 어렵다. 행동경제학의 창시자 다니엘 카먼은 '생각에 관한 생각'에서 자신의 신념에 일치하는 정보는 쉽게 받아들이고 신념과 일치하지 않는 정보는 무시하는 경향을 확증편향이라고 한다. 자신이 보고싶은 것만 보고 실제로 존재하는 많은 사실들을 자신의 생각의 영역에서 자연스럽게 제거한다고 한다. 보통의 우리가 위대함에 가까워지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초연결을 통해 인간은 많은 정보를 습득하게 되었다. '무엇'이라는 물질적인 현상과 상황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남과 나를 비교하는 삶에 익숙해져버린 것이다. 남의 생각을 가져와 자신의 것이라 합리화시켜 버린 것이다. 그리고 다시 초연결성을 통해 여과없이 그것을 뱉어내었다. 숙성된 자신의 생각과 삶의 모습은 부차적이다.

다시금 그 옛날 선현들이 밤하늘의 별을 보며 호연지기를 키우고 사물의 본질에 접근했던 '왜'에 집중해야 할 때이다. 세상이 어렵다고 하지만, 우리는 변함없이 살아왔고, 살아나갈 것이다. 편안하다는 감각과 재미있다는 사유가 더 필요한 요즘이다. 

맹자의 말로서 지금 바로 이 순간을 평화롭게 한다. 

 "하늘이 장차 그 사람에게 큰 사명을 내리려 할 때는, 먼저 그의 심지를 괴롭게 하고, 뼈와 힘줄을 힘들게 하며, 육체를 굶주리게 하고, 그에게 아무것도 없게 하여 그가 행하고자 하는 바와 어긋나게 한다. 마음을 작동시켜 성질을 참게 함으로써 그가 할 수 없었던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이욱희(위아가치디자인연구소장, vauedesign0433@gmail.com)
이욱희(위아가치디자인연구소장, vauedesign043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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