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lue design column 15] 양자철학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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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lue design column 15] 양자철학의 시대
  • 한국데이터경제신문
  • 승인 2020.05.28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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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자철학을 통해 서양의 자본주의를 아우르는 동양적 커뮤니티가 새롭게 나올 때 -

 

철학하는 삶. 순간, 떠오르는 건 궁핍하고 어려운 현실 속의 인간. 그런 이미지인가. 최소한 나에겐 그렇다. 무난하게 중간만 하고 살면 된다는 얘기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으면서 살았다. 무난한 삶이란게 무엇일까? 남들과는 비교적 다른 길을 걸어온 필자와 같은 사람에겐 낯설고 어려운 질문이다. 그래선지 무난하다는 얘기에 유독 눈과 귀가 쫑긋 서기도 한다. 어려운 명제이다. 

생각을 강요받았던 시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또 주관적인 생각을 강요받는 시절에 청년 시절을 보내고, 사는데로 살아야 하는 나날에 지금을 살고 있다. 주체적인 삶보다는 객관적이라는 현상에 붙잡혀 살아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의 생각은 더욱 더 자신에게 향하고 있다는 사실은 명확한 과제이다.

인간이 추상적인 신에서 구체적인 인간으로의 생각이 변화한 것은 서양의 경우 칸트의 ‘순수 이성 비판’에서 비롯한다. 이전까지 신으로부터 모든 생각의 시작점을 찾았다면 칸트에 의해  우리는 어떤 사물의 인식을 그때 그때마다 감각기관에 의해 즉시 영향을 받으므로 오로지 이성만으로는 사물의 본질을 이해할 수 없다고 이해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이성의 한계를 명확히 했다. 물질 자체는 이해할 수 있어도 물질 자체의 원리와 비밀은 알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향후 물리학계의 양자 역학을  탄생시켰다. 

양자역학이란 말을 이해하려면 ‘양자’와 ‘역학’을 각각 살펴보는 것이 좋다. ‘양자(量子)’로 번역된 영어의 quantum은 양을 의미하는 quantity에서 온 말이다. 무엇인가 띄엄띄엄 떨어진 양으로 있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역학(力學)’은 말 그대로는 ‘힘의 학문’이지만, 실제로는 ‘이러저러한 힘을 받는 물체가 어떤 운동을 하게 되는지 밝히는 물리학의 한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해 ‘힘과 운동’의 이론이다. 이렇듯 양자역학이란 띄엄띄엄 떨어진 양으로 있는 것이 이러저러한 힘을 받으면 어떤 운동을 하게 되는지 밝히는 이론이다. 바이러스로 인해 세상이 발칵 뒤집힌 작금에 양자역학은 더욱 더 현실의 삶을 변화시키는 대안으로 등장하고 있다. 퀀텀급 스마트폰의 출현과 초미세 단위의 양자 구조까지 펼쳐지고 있는 바이오 업계의 변화가 눈부시다. 

수단으로서의 양자 역학은 철학적 사유의 단계를 거쳐야 한다. 그런 면에서 양자철학의 시대가 필요하다. 양자철학이란 개념은 필자에 의해 조합된 단어이다. 초개인화된 삶의 목적과 방향을 이해하고 판단하는데에 가장 적합한 언어가 양자철학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생각의 구조와 방향은 보통 키워드로 표현된다. 야후, 네이버, 구글 등의 포탈 업체가 관심을 가졌던 것은 인간이 생각으로 만들어낸 키워드였다. 그러나 이제 그 키워드도 포화상태에 있다. 구글의 사명은 10의 백승을 의미하는 구골로 하려고 했으나, 이미 있어서 구글로 했다고 한다. 의식의 확장에 관해서 인간은 달려왔다. 이제 거시적인 것을 넘어선 미시적인 것에도 관심을 기울여야할 할 때가 되었다. 그것은 인간을 온전히 한 우주로 생각하고 인간과 인간의 문제, 인간과 바이러스와의 문제 등 인간이 지닌 아주 본질적인 것을 고민하고 해결해나가는 방법이다. 

 “참의 반대말은 거짓이다. 하지만 심오한 진리의 반대말은 또 다른 심오한 진리일지도 모른다.” 양자물리학의 태두 닐스 보어가 한 말이다. 보어는 원자 안에서 전자가 핵을 축으로 안정적으로 공전하지만, 다른 에너지 수준으로 뛰어넘어갈 수 있다는 ‘보어 모델’을 제시했고 원자현상이 입자이면서 파동인 현상을 ‘상보성의 원리’로 정리해서 양자물리학의 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빛이 입자이면서 파동”이라는 말은 현상계에서는 말도 안 되는 논리였지만, 원자 세계에서는 상호배타적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으로 성립한다.

이러한 생각은 당연히 철학적 사유와 일치한다.  특히 중국, 인도 철학과 현대과학의 접점에서 생각이 하나로 이해된다. 보어 역시 자신의 이론이 동양철학의 패러다임과 조화를 이룬다고 봤다. 이는 공자의 유가사상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양자 철학의 시대를 통해 한단계 더 진일보한 인류의 모습으로 나아갈 것이다. 

공자는 가상의식을 통한 ‘관계’, 맹자는 변덕스런 세상에서 ‘자기 결정’, 노자는 우리가 만드는 세상에서 ‘영향력’, 장자는 변화하는 세상에 ‘즉흥성’, 순자는 세상을 다스리기 위한 ‘인간성’에 대해 제시했다. 그리고 묵자, 양자, 관자 등의 무수한 분산화된 생각이 미시적으로 이어져오고 있다. 양자철학을 통해 서양의 자본주의를 아우르는 동양적 커뮤니티가 새롭게 나올 때이다.

이욱희(위아가치디자인연구소 소장, www.valuedesign.me)
이욱희
위아가치디자인연구소 소장
 http://www.valuedesign.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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